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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음보살의 염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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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흥륜사 댓글 0건 조회 878회 작성일 21-08-23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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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음보살의 염불

 

중국의 천재 시인이자 대 문호인 소동파가 불인(佛印)선사를 친견하고 두 분이 도량을 산책하던 중 법당 안에 앉아계신 관세음보살을 보게 되었다.

그런데 유심히 보니 관세음보살이 손에 염주를 들고계신 것이었다. 이를 본 소동파가 큰 스님! 관세음보살께서 염주를 들고 계신까닭은 무엇입니까?

 

부처님이나 다름없는 관세음보살께서 염주를 가질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다. 선사는 그렇지가 않소이다. 관세음보살은 번뇌를 멸하고져 저 염주를 들고 열심히 염불하고 계시는 것입니다하였다.

 

소동파가 그래서 더욱 이상 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관세음보살님은 무슨 염불을 하고 계십니까?”

관세음보살은 관세음보살을 찾는 염불을 하고 계시지요

그렇다면 자기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자기를 찾고 있다는 말씀 입니까?”

그렇습니다.”

옛 사람들의 말에 남에게 구하느니보다 자신에게 구함이 옳은 길이라 하였지요. 라고 하였다. “

 

우리는 이 두 분의 대화 에서 무엇인가 느끼는 것이 있어야 한다.

관세음보살이 생사 고뇌를 뛰어넘은 거룩한 보살이신데 무슨 번뇌와 소원이 있어 그토록 열심히 염불을 하고 계시다는 말인가?

 

이는 마치 자식이 병들면 부모도 병들고 자식이 괴로우면 부모도 괴로워하듯 관세음 보살님도 중생이 병나면 같이 나고. 중생이 근심하면 관세음 보살님의 근심과 번민도 그칠 날이 없기에 언제나 염주를 들고 염불 하고 있다 는 것이다.

 

이 얼마나 처절한 관세음보살의 중생 사랑인가? 이를 두고 불심은 곧 모정(佛心母情) 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여기서 유심히 볼 대목은 관세음보살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자기 자신을 찾는다는 것은 철저한 자기반성을 말하는 것이다.

즉 자기 자신이 발원한 중생을 제도하겠다는 원력과 실천에 대한 반문이고 성찰인 것이다.

 

이 대목은 우리들 자신도 자기의 자리를 잘 지키고 각자에게 주어진 책무를 다 하고 있는지를 스스로 성찰하고 반성 하라는 가르침이 아닌가 싶다. 성직자는 성직자대로 정치인은 정치인대로 부모는 부모대로 불자는 불자대로 저마다 부여된 자기 자신에 대하여 반문하고 성찰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이 두 분의 대화 속에서 관세음보살은 말해 주고 있다.

 

 

글 법 륜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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