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같은 사실은 동국 여지승람에 기록되어 전해 오고 있습니다.

그 후 청량사는 약210여 년 동안 전하여 왔으나 1592년 임진란의 병화로 소실된 후 340여 년 동안 빈터만 남아 있다가 다시 절이 세워지게 된 동기 는 다음과 같은 기이한 인연이 있었습니다.

서기1938년10월 인천 시내 금곡동에 살던 하진명河鎭明거사와 부인 이인봉 李仁鳳여사의 부부사이에는 슬하에 아들이 없었습니다. 이들 부부는 자식을 얻기 위해 명산대찰을 다니면서 정성을 드렸으나 소원을 이루지 못하여 근심하고 있던 차 어느 날밤 꿈에 키가 9척이 넘는 큰 스님 한분이 나타나서 말하기를 "그대 부부가 후손이 없어 애태우는 모습이 가엾게 보여 내가 좋은 길을 일러 주려고 왔노라. 이 밤이 새거든 솔 섬이란 곳을 찾아가면 그 산에서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거룩한 고승이 공부를 하시던 좋은 절터가 하나 있으니 그곳에 절을 짓고 많은 사람들에게 공덕을 베풀도록 하라! 그러면 반드시 원하는 바를 이루게 되리라" 하고서는 홀연히 사라져갔습니다.

선명한 계시를 받은 하공내외는 꿈속에서 스님이 가르쳐 준대로 이튼 날 솔 섬을 찾아가니 서쪽으로 해가 넘어간 뒤인데도 유난히 밝은 햇살이 비치는 곳이 있어 가보니 바로 그 자리가 꿈에 계시 받은 곳이었습니다.

그 순간 너무도 희유하고 감격하여 “저희 부부를 가련하게 보신 부처님께서 이러한 터를 점지해 주셨으니 너무나 고맙습니다. “ 하고 이곳에서 기도를 올리면서 몸소 터를 닦고 사찰을 세우고 부처님을 모신 뒤 절 이름을 부부의 이름 한자씩을 따서 인명사仁明寺라 하였습니다.

그 후 이들 부부는 꿈속에서 그 고승이 계시한 약속대로 60세에 드디어 귀한 아들을 얻게 되었다. 하공내외는 은혜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꿈에 본 고승의 모습을 그대로 조성하여 대웅전 뒤 거북 바위에 모시고 보니 그 형상이 다름 아닌 부처님이었습니다. 그제 서야 “이는 필시 부처님이 나옹 화상으로 화현하시어 우리 부부로 하여 금 이 절을 세우도록 하였구나.“ 하고 깨달았다고 합니다.

그 뒤 하공은 부처님의 영험과 불법의 깊은 진리에 감화되어 출가하여 사문이 되어 이 절에서 수행정진 하다가 열반에 들었습니다.
그 후 1966년 현 주지 법륜(法輪)화상이 주지로 취임하여 오늘날에 이르는 40년 동안 대웅전을 비롯한 현재의 모든 건물을 새로 짓고, 108계단을 놓고 진입로를 확장 포장하는 등 수많은 불사를 이룩하여 오늘의 대사찰로 크게 중흥시킨 뒤 절 이름을 일어날 흥興 수레바퀴 륜輪 흥륜사로 개칭하였습니다.

이 뜻은 곧 부처님 진리의 수레바퀴가 온 인류 중생들과 하늘땅에 가득하고, 영겁에 길이 흥륭 하라는 뜻입니다.

1983년에 조성된 대웅전 내부의 목조천수천안千手千眼관세음보살상은 불교 조각 예술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고, 목조후불탱화와 신중탱화도 한국의 자랑 거리입니다.

뿐만 아니라 부처님을 떠받들고 있는 탁자는 불교의 설화로 조각되어 있고. 대웅전 문짝은 매란국죽 십장생을 입체로 조각하여 국내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없는 귀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밖에도 일중 김충현 선생의 대웅전 현판과 동정 박세림, 여초 김응현, 송석 정재흥, 효람 박병규, 등 한국 서예 대가들이 쓴 각 전각의 편액들은 보는 이들의 눈길을 멈추게 하고 있습니다.

대웅전에는 정법륜 주지스님이 스리랑카에서 모셔온 부처님의 진신 사리가 봉안되어 있고,석가모니가 성도 하신 후 최초 설법을 기록한 천삼백 년 된 패엽경具葉經과 통일신라의 관음보살상,삼존불감 ,탱화 그리고 지방문화재 59호인 자치통감 강목과 58호인 대장일람 등 성보 聖寶 500여점이 소장 되어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법당 앞에 서서 일망천리 넓은 바다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속세의 찌든 마음과 번민들이 문득 사라지고 마음이 시원하게 트여진다.빼놓을 수 없는 것은 경주의 석굴암과 양양의 낙산사와 대조를 이루는 흥륜사 경내에서만 볼 수 있는 서해의 낙조落照가 일몰하는 신비로운 귀경은 보는 이는 누구 나 환희의 탄성이 저절로 나옵니다.

오늘날 이 강산에는 명산대찰도 많지만 특히 바다를 굽어보는 관음보살의 영험이 깃든 흥륜사는 날이 갈수록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