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 큰스님 베트남 방문법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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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흥륜사 댓글 0건 조회 563회 작성일 24-03-24 09:55본문
법륜 큰스님 베트남 방문법회
번에 법륜 스님이 방문한 “닌빈 바이든 사원”과 “꽝닌성 바방사”는 베트남불교의 중심사원 이었습니다. 이번 방문에는 흥륜사 최종갑 신도회장
을 비롯한 신도 임원 20명이 동행하였습니다. 스님과 천여 명의 불자들이 우리 일행을 열렬히 환영해주었습니다.
대웅전에서 한, 베트남의 번영과 안녕을 비는 합동 기도를 올리고, 오후 2시에는 법륜스님과 베트남 불교의 지도자 틱쭉 타이민 스님이 “시대
중생들의 고뇌와 행복”이란 주제로 설법을 하여 수많은 법회에 참석한 청중들의 박수를 받는 성대한 법회를 개최하여 방문의 꽃을 피웠습니다.
이 외에도 베트남 불교회의 도움으로 베트남 수도 하노이와 “하늘에서 용이 내려왔다는 신기한 전설의 섬 하롱베이, 육지의 하롱베이로 알려
진 닌빈을 돌아보고 보람 있고, 오래 남는 여정을 마치고 귀국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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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베트남 민족과 종교
베트남의 수도는 “하노이”이고 공식어는 베트남어이며, 화폐는 동이다. 베트남 민족은 베엣 족이 89%를 차지하며, 그 외 53개의 소수민족은 11% 밖에 안 된다. 그리고 베트남 국민의 80%가 불교를 믿는다.
중국, 라오스, 캄보디아, 타이만, 통킨 만과 국경을 접하고 있고, 세계 최대의 인구과밀 국가이며, 아열대성 기후여서 년 간 3모작이 가능한
나라이다. 국토의 넓이는 남한의 약 3배로 33만㎢이며, 인구는 약 9,885만 명이나 호적에 올리지 않은 국민을 합치면 1억2천만 명 정도로
추산한다.
2. 베트남의 역사문화
베트남은 인도차이나반도 동부에 위치하여 중국의 영향으로 처음은 한자를 사용하였지만, 8~9세기경 한자의 뜻과 음을 차용하여 쯔놈
( 문자를 만들어서 사용하기 시작하여 현재의 베트남 국어로 사용하고 있다.
베트남을 월남(越南)이라 한 것은 고대 중국이 “남쪽 지역의 월(越)나라 ”라는 뜻에서 였다. 기원전 111년에 한무제 (한나라)로부터 10세
기까지 천년을 지배 받아왔고, 1883년 베트남은 프랑스의 보호국이 되었으며, 1954년에 남과 북이 내전을 치르다가 1975년 북베트남이
남베트남을 통일하여 오늘에 이른다.
3. 베트남 불교의 전래
베트남은 『이혹론(理惑論』의 저자 “모자(牟子)”가 2세기~ 3세기 중기에 불교를 전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전에 인도 승려들이 베트남에
와서 활동하고 있었다고 전한다.
4~6세기 남인도 바라문 출신 “비니타루치”가 베트남에 처음으로 선(禪)을 전하였고, 그가 세운 종파를 “비니타루치파(派)”이다. 9세기에
무언통파(無言通派)가 생겨났고, 11세기 성종(聖宗) 황제가 새로운 종파 초당파(草堂派)를 여는 등 그후로 여러 선종이 꽃을 피웠다.
4. 베트남 불교의 20세기 이후
❶ “틱꽝득”스님의 소신공양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후 베트남 남부는 영국이 제국주의 청산을 맡았고, 북부는 중국이 제국주의 청산을 맡았지만, 1946년 11월 프랑
스가 관세를 문제 삼아 베트남과 전쟁을 일으켰다. 이때 베트남이 프랑스군에 승리하여 1955년 10월 국민투표를 실시하여 “응오딘지엠”
이 베트남의 새 대통령이 되었다.
지엠 정권은 가톨릭을 보호하고 불교를 탄압하였다. 이에 임제종의 종장(宗長) “틱꽝득”스님이 인권과 종교자유 회복을 위한 비폭력 항쟁
에 참여하였고, 정부에 여러 번 간곡히 요구하였으나 지엠 정권은 불교 탄압을 중단하지 않았다.
이에 “틱꽝득”스님은 1963년 6월 11일 판딘퐁 거리에서 가부좌를 한 채 몸에 기름을 붓고 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종교의 자유와 베
트남인들의 평화와 권리를 달라"며 소신공양(燒身供養)을 하므로써 전 세계를 놀라게 한 “틱꽝득” 스님의 보살행은 모두가 기억한다.
❷ 틱낫한 스님의 교화
틱낫한 스님은 1965년 미국에 가서 평화안을 제시한 뒤, 미국과 프랑스를 무대로 활동하며 참여 불교를 주창하였다. 그분은 단순히 사회적
문제해결을 위해 불교의 가르침을 펼치거나 사회적 불의에 항거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불교를 일상생활 속으로 끌어들여 자신의 평화를 발견할 것을 강조하였다. 자신의 평화를 발견하지 않고서는 누구도 세상에 평화를 가져다
줄 수 없다고 보신 분이다.
그는 사회활동을 하는 사람에게 명상을 강조하였다. 여기서 명상을 한다는 것은 사물을 깊게 보는 것이고, 어떻게 자신을 바뀔 수 있고, 어떻
게 상황을 바꿀 수 있는지 밝게 보는 법을 알리려고 노력하였던 세계적인 지성이었다.
5. 베트남 불교의 현황
베트남 인구의 약 1억명 중 80%가 불교신자이다. 베트남승가회는 2024년 현재 설립 43주년을 맞이한다. 이 단체는 무료진료를 해주는 병
원 700여 개를 설립하였고, 165개의 학교, 16개의 유치원, 장애어린이 보육원 등을 운영하고 있다.
지원활동은 국내 뿐만 아니라 세계 국가의 불우한 이웃에게도 도움을 주고 있다. 2020년 현재 인도주의 활동 기금으로 년간 6,000억원 을
모은다고 한다.
베트남 VNA통신에 따르면, 베트남에는 현재 4만 9,371명의 스님들이 있고, 1만 3,775개의 사찰이 있으며, 8개의 대학에서 승려를 교육하
고, 31개의 고등학교, 10개의 불교 초등학교를 운영하고있다고 한다.
매년 이곳에서 배출된 우수한 비구와 비구니 스님들을 인도, 미얀마, 미국, 호주, 중국, 스리랑카, 프랑스 등으로 유학을 보낸다고 말하였다.
6, 베트남 불교의 국민 화합과 자비나눔
베트남 불교가 사회주의 정권 아래서도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는 이유는 베트남 불교가 중생(인민)의 편에 서고자 노력했기 때문이다. 베트
남이 프랑스 식민정권에서 독립투쟁을 할 때 불교사원은 독립운동가들의 양성소이자 피난처였다.
월남과 월맹이 전쟁을 치를 때 승려들은 자진해서 군인이 되었고, 북베트남과 남베트남의 승려와 불자들은 신앙적으로 하나가 되었다. 비록
나라는 분열되었지만, 불교는 하나였다는 말이다.
불교가 베트남 통일에 기여한 바가 너무나 컷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베트남 통일 이후 국민재교육이 필요했을 때 사찰들은 주민들 재교육의
학교였다.
베트남에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섰지만, 이웃 캄보디아처럼 대량학살이 발생하지 않은 이유는 불교의 자비에서 찾을 수 있다. 베트남의 승려
와 신도들이 살생을 반대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불교의 미래가 그리 밝지만은 않다. 21세기에 들어인터넷을 통해 베트남에서 종교의 자유와 인권을 보장하고, 베트남 불교
연합회의 정치적 활동을 허용하라는 것이다. 그 예로 2005년 베트남 불교협의회가 틱낫한 스님의 베트남 방문을 요구했지만, 정부는 틱낫한
의 방문을 정치적으로 악용할 것을 우려하여 반대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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