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가계 낙산 대불참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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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흥륜사 댓글 0건 조회 1,012회 작성일 08-07-27 10:42본문
서안. 장가계. 낙산대불. 아미산. 대족석굴 순례기
2004. 4.24-30일까지 6박 7일간의 중국의 고도 서안- 장가계-낙산대불- 아미산 중경 보정산 석굴 성지순례 길에 오른다. 일행으로서는 변기수 회장님 내외를 비롯한 30여 분의 흥륜사 불자들이 함께한다.
인천 국제공항에서 이륙한 비행기는 2시간30분 만에 중국의 고도 서안(西安)에 내린다. 당나라 때는 이곳을 장안[長安]이라 불렀기에 장안이란 말로 더 알려져 있다. 서안西安은 아테네, 로마, 카이로와 함께 세계4대 고도[古都]로서 기원전 11세기부터 서기 10세기까지 13대의 왕조와 정권이 서안에 도읍을 정하거나 정권을 세웠다.
서안은 1100년의 역사 속에서 서주[西周] 진[秦] 서한[西 漢] 당[唐]이 가장 흥했던 시기라고 볼 수 있다. 서안의 면적은 9.983 평방키로 미터이고, 인구는 약 7백만 명이며 사천성의 성도이자 중국에서 열 번째로 큰 도시이다.
20여개의 대학과 연구소를 갖춘 교육도시로서 지금은 중국 군수공장, 우주연구센터 등 핵심적인 사업체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과거 동양과 서양의 문화교류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실크로드의 기점이었던 서안은 수많은 역사인문 경관을 볼 수 있다.
고古 성벽과 돌로 된 서고라 불리는 비림 대안 탑 소안 탑 진시황 능 병마용 화청지 등 수많은 외국인들이 중국을 여행 할 때 서안을 필수 코스로 잡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시원하게 뚫린 고속도로를 따라 넓게 펼쳐진 비옥한 농경지를 바라보며 30여분을 달리면 서안시내가 나온다.
서안의 제일고성(第一古城)
첫 순례지로 서안을 대표하는 고성을 구경하기 위해 성각위에 올라서자 도시의 경관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 고성은 중국에서 보전하고 있는 건축물 중에서 가장 완전한 고성중의 하나로 전체 길이가 13.6km이고, 높이가 12m이며 폭이15m로 높고 두터움을 지니고 있다. 이 고성은 명나라 홍무제 3년에서 11년까지 건설된 것으로 600년에 이른다.
비림碑림
비림을 들어가는 입구 연못에는 황금색잉어들이 해엄을 치며 평화로이 놀고 있고, 커다란 나무숲 사이 여기저기에는 큰 비석들이 많이 서있다. 비림은 중국 고대 서예 예술의 보고이자 고대문헌서와 비석의 조각 도안 등이 집대성되어 있는 곳으로 대외 문화교류의 역사적 사실을 반영하고 있는 유적지이다.
비림은 1087년 북송 철종 2년에 세워졌고, 한[漢]대부터 청[淸]대에 이르기까지 각 조대의 1천여 개의 묘비와 3천여 개의 비석이 전시되어 있어 마치 비석들이 모여 숲을 이룬다하여 비림이라한다. 현
장법사의 대안 탑(大雁塔)
현장법사의 법향이 스린 대안탑에 참배를 드리는데 해가 막 서신을 넘는다. 서안의 남쪽에 위치한 대자은사 (大慈恩寺)경내는 중국에서 유명한 불탑 중의 하나인 652년 당나라 때 현장법사가 인도에서 모셔온 불경과 불상을 보존하기 위해서 건립된 현장탑이 있다.
7층 누각형식으로 이루어진 이 탑은 총 높이가 64m이고, 외부는 벽돌로 되어 있으며, 탑 내에는 나선형의 계단이 있어서 올라갈 수도 있다. 탑 위에 오르면 매 층의 사방으로 각기 하나의 아치형 문이 있어서 먼 곳까지 내려다볼 수도 있다.
대안 탑이 있는 광장에는 수많은 시민들이 참배를 드리느라 물결을 이루고 있고, 대자은사 경내로 들어가니 참배객들이 올리는 향연기가 마치 안개처럼 자욱하다.
현장법는 신라의 혜초스님에 못지않게 장안을 출발하여 머나 먼 천축국의 부처님 유적지를 걸어서 순례하였고, 학문수행과 구법을 통하여 불교역경 사에 길이 남을 불후의 공적을 남기신 보살이시다. 우리는 현장법사의 큰 원력과 높으신 법력과 은덕에 감사하는 참배를 올리고 대자은사를 나선다.
[4월 25일] 화청지
오늘 하루도 가는 곳마다 보람이 있고 좋은 인연 짓기를 발원 하면서 금강경 한편을 염송하고 양귀비와 현종의 사랑이 얽힌 화청지(華淸池)로 향한다.
화청지는 옛 부터 수려한 풍경과 지하온천수로 유명하여 역대제왕의 관심을 받아 왔던 곳이다.
특히 당나라 현종과 양귀비가 함께 겨울을 지내던 곳으로 현종이 양귀비를 위해 화려한 별장을 지었다고 한다. 당시(唐詩) 중에는 화청지를 소재로 한시가 많이 등장되기도 한다. 호수를 중심으로 양귀비가 실재로 사용하였다는 목욕탕과 가슴이 불룩 나온 양귀비의 석상이 세워져 있어 그의 석상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해본다.
진시 황능
진시황 능에 이르자 그 옛날 진시황이 행차할 때의 복장과 병장기를 갖추고 장중하고 신나는 음악을 울리며 관광객을 위한 시연행사를 한다. 능을 적시는 봄비가 내리지만 일행들은 흥겨운 음악과 시연행렬의 뒤를 따라 돌며 즐거워한다.
이 능은 중국을 통일한 최초의 황제 진시황이 묻혀있는 곳이다. 이 능은 37년에 걸쳐 완공된 무덤으로, 둘레가 6km이고, 높이는 40m에 달한다. 무덤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산이다. 이유는 진시황이 무덤을 설계할 때 훗날의 도굴을 막기 위해서 여러 함정들을 설치해 두었기 때문이라 한다.
1987년 유네스코는 진시황 능을 세계유산 목록에 넣었다. 너무 넓어서 걸어서 돌아보기가 힘들어 변 회장 내외분과 조랑말이 끄는 마차를 타고 능을 한 바퀴 돌아본다. 진시황의 병마용 兵馬俑 병마용이란 흙으로 빚어 구운 병사와 말을 가리키는 말이다.
진시황이 죽은 후 자신의 무덤을 지키기 위해서 만들어 놓은 것으로 세계 8대 불가사의 하나로 불릴 만큼 대단히 큰 규모이다. 서안시내에서 동북쪽으로 약 30km 거리에 있고, 진시황 능에서 북동쪽으로 1.5km떨어진 곳에 있다.
병마용은 그동안 땅속에 묻혀 있던 것을 1974년 중국의 한 농부가 우물을 파다가 우연히 발견하여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3개의 전시관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1호가 농민이 발견한 것이고, 2.3호 갱은 현재도 발굴중이다.
갱내에는 6천개의 실물 크기의 도용이 묻혀 있고, 약1천개 정도가 진열되어 있으나 제각기 자세와 표정. 복장과 헤어스타일을 달리하고 있는 것에 놀란다.
호남성(湖南省) 장가계
깊은 밤 시간 서안공항에서 국내선을 타고 1시간 남짓 날아서 호남성(湖南省) 장가계 공항에 내리자 억수 같은 비가 쏟아진다. 숙소에 여장을 풀고 내일 여행에 지장이 없도록 비가 그쳐 주길 관세음보살님께 기도를 올려본다.
만약 내일 날씨가 나쁘면 천하의 명산 장가계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4월 26일] 비가 그쳐주길 발원하였는데 날이 밝았는데도 비는 그치지 않고 계속 내린다. 이렇게 되면 장가계 구경은 기약 없는 후일로 미뤄야하고 행선지를 변경해야 한다.
보봉호수峰湖水)
내리는 비를 맞으며 숙소를 출발하여 보봉호수峰湖水)에 이르자 태양이 구름을 제치고 솟아오르는 모습에 모두가 환호를 지른다. 보봉호수 보봉 호수는 땜을 막아서 건설한 인공호수로서 해발 430m 위에 있는 산정호수이다.
수심은 72m이고 폭이 가장 넓은 곳은 50m이다. 보봉호수를 둘러싸고 있는 산들의 모습은 선녀바위, 두꺼비 바위, 공작바위, 사람이나 짐승같이 생긴 기암으로 이루어져 있고, 산허리를 감고 도는 운해는 마치 용이 승천을 하는 듯하다.
배를 타고 호수를 유람을 할 때는 선녀 같은 아가씨들이 고운 옷을 입고 그림 같은 산을 배경으로 푸른 호수위의 정자에서 광객들을 환영하며 손을 흔들고 음악과 노래를 불러준다.
천하명산 장가계 張家界
중국 호남성(湖南省) 서북부에 위치한 장가계는 1982년 중국 최초의 산림공원으로 지정 된 곳이다. 1992년 유네스코 세계 자연유산으로 등록되면서 유명해진 곳이다. 장가계 시에서 버스를 타고 조금 벗어나면 깎아지른 바위산들이 숲을 이루는 골짜기를 따라 들어가면“장가계”라는 돌비석이 서있는 평지가 나오는데 비경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여기서 작은 버스를 갈아타고 좀 더 올라가면 깎아지른 절벽 산을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게 된다. 정상 7부 지점에서 바라보는 장가계의 풍광은 말로 설명할 수가 없다. 기기 미묘한 바위산들이 서로 엉켜 위로는 구름보다 높게 솟아오르고, 아래로는 천길 비경을 이루면서 나를 향해 성큼 성큼 다가오는 것만 같다.
주봉에 오르면 무릉원의 산봉우리와 계곡이 한꺼번에 눈에 잡힌다. 천자산(天子山) 동 서 남 3면의 바위산이 대나무 숲처럼 하늘을 받들고 있고, 그 사이로 깊은 계곡이 흐르고 있어 마치 천군만마가 포효하며 달려오는 것만 같은 장쾌한 풍광이 시선을 압도 한다.
천자산의 많은 기암절벽 중에 얼른 눈에 띄는 어필봉(御筆峰) 3개 봉우리는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고, 높고 낮은 산들이 들쑥날쑥 하지만 더할 나위 없이 조화로운 장관을 연출해 낸다. 흙 한줌 없는 돌산 봉우리 위에는 푸른 소나무가 서있어 마치 붓을 거꾸로 꽂아 놓은 것만 같다하여 어필 봉이라 부른다.
정상에 오르니 신기하게도 면소지 단위만큼 큰 마을을 이루고 생활하면서 관광객들을 위한 버스와, 기념품가게, 음식점 등 있을 것은 다 있다. 중국 속담에 “사람이 태어나서 장가계를 가보지 않았다면 100세를 산들 어찌 살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 라는 말을 할 마큼 중국 사람들은 장가계의 풍광을 극찬한다.
몇 시간을 구름위에서 아름다운 풍광을 즐기다가 아쉬운 마음으로 케이블카를 타고 천자산의 선녀가 인간세계로 하강을 하듯 산을 내려간다. 저녁 공양을 마치고 이곳의 전통의 마사지로 여행으로 지친 몸과 부르튼 발을 풀고 성지순례의 3일째 밤을 맞는다.
[4월 27일] 금편계곡
금강경 한편을 읽고 아침바람을 쏘이며 더 없이 맑은 날씨에 어제 밤 날씨 때문에 애를 태우던 생각을 하니 마냥 즐겁기만 하다. 어제 장가계는 산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구경하였으나 오늘은 아름다운 계곡을 따라 수려한 풍광을 올려다보는 금편계곡(金鞭溪谷)을 보기위해 간다.
금편계곡은 마치 산수화를 그려서 두루마리를 펼쳐놓은 듯 하고 자매바위. 약초를 캐는 노인바위, 어머니가 아이를 안고 있는 모자바위 등 입구에서 계곡의 끝자락까지 7.5km의 산책로는 누구나 도취되고 흠뻑 빠질 수밖에 없는 코스다.
그래서 금편계곡은 한번 걸으면 10년은 젊어진다 해서 신선계곡이라 불린다. 깎아지른 바위가 병풍처럼 펼쳐지는 계곡으로 황금 빛나는 300m높이의 금편 암을 비롯한 기묘한 바위산들과 나무와 쏟아지는 물이 빚어내는 계곡의 풍경은 이르는 곳마다 사람의 시선을 멈추게 한다. 중국정부에서 산림공원으로 지정한 이 계곡은 2천여 종의 식물과 28종의 진귀한 야생 동물이 서식하는 중국제일의 생태공원이기도하다.
황룡동굴黃龍洞
군지평 동쪽으로 8km떨어진 황룡동굴을 보기위해 간다. 4월인데도 뜨거운 태양이 한여름 같이 열기를 내어뿜는다. 버스에서 하차하여 동굴까지 걷는 20여분 동안 도로변 상가의 사람들이 물건을 팔아달라고 어찌나 달라붙는지 힘들게 한다.
황용동은 초입에서 배를 타고 한참을 들어가는 1.5km나 되고, 수직 고는 160m로서 20헥타르에 달하는 4층으로 이루어진 석회암 동굴이다. 입구는 별로지만 깊이 들어갈수록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종류 석들이 땅에서 솟아 있고, 천정에 매달려있어 보는 사람에 따라서 천변만화를 일어 킨다.
이틀 동안 장가계의 아름다운 비경과 풍광을 즐기고 낙산대불과 아미산을 참배하기 위해 밤 12시 국내선 비행기에 올라 사천성 성도를 향해서 날아간다.
[4월 28일] 사천성-성도 무후사
새벽2시가 넘어서 성도 가원호텔에 도착하여 눈을 조금 붙이고 6시에 일어나 낙산대불과 아미산을 향해 출발한다. 사천성(四川省)하면 우리에겐 사천요리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고대 춘추전국시대의 촉나라와, 삼국시대의 유비의 촉나라도 바로 이곳 사천성이다. 면적은 우리 남한의 다섯 배가 넘는 56만8천 평방키로 미터이고, 인구는 8.330만 명으로 가장 큰 도시가 성도(成都)이다.
성도의 무후사 무후란 말은 제갈공명의 시호인 “충무후”에서 따온 말로서 6세기 초에 유비를 모신 조열 묘와 나란히 세워져있다. 국보 무후사 중에서도 특히 유명한 것은 삼절 [문장, 서법, 석각, 기술]로 이름이 높은 당비 촉한시대에 유비를 받들던 관우 장비를 비롯한 문, 무, 관 28명의 소상이 안치되어 있다.
낙산대불
성도에서 낙산대불로 가는 도로가에는 색 노랑 유채 꽃들이 넓은 들녘을 끝없이 물들이고 있다. 사천성 낙산시 능운산에 있는 낙산 미륵대불은 높이가 71m 로서 세계에서 가장 큰 마애불이다.
이곳은 민강, 대도하, 청의강 등 세 강이 합류하는 지점으로 배와 사람이 침몰하는 사고가 많은 것을 본 해통 법사가 이를 안타깝게 여겨 부처님의 법력으로 사고를 막고자 서기 713년부터-803년 까지 90년에 걸쳐 완성된 대불이다.그래서 산과 강이 잇닿은 지점에 한쪽 산 전체의 절벽을 깎아서 대불을 조성하였기 때문에 산전체가 부처님이고, 부처님이 산이 되어 있다.
대불의 좌우 양 옆에는 좌우보처 보살상과 신장 등 90기가 조성되어 있는데 그 모두가 신앙의 대상이요, 세계문화 유산으로 지정 된 보물들이다. 가까이서는 대불의 전체를 친견할 수 없기 때문에 강물에 유람선을 띄우고 멀리에서 부처님을 바라보며 예불을 올렸다.
더욱 신기한 것은 배를 타고 원거리서 능운 산을 바라보면 산전체가 부처님이 누어계신 모습과 똑 같다. 하선하여 경사가 심한 숲속 계단을 따라 산 정상에 오르니 해통 화상이 창건한 능운사가 있다. 참배를 드리고 그늘나무 아래서 휴식을 취하며 도량을 살펴보니 대불의 두상(頭上)에 해당되는 위치다.
가까이서 대불을 참배하려고 깎아지른 비탈진 계단을 타고 내려가 부처님 앞에 108배를 올린다. 날씨가 무더워 대불이 모셔진 산 전체를 한 바퀴 도는데 옷이 땀으로 흠뻑 젖고 얼굴은 벽돌색이 되고 만다. 지근에서 친견한 대불은 조각이 섬세하고 생명력이 넘치는 참으로 원만한 상호를 하고 계신다. 불상의 크기가 마치 부처님의 발등위에 수백 명의 사람이 족히 앉을 만할 정도다.
보현도량 아미산 만년사
아미산은 낙산대불에서 버스로 40여분 달리자 아미산 주차장이 나온다. 여기서 전용버스를 갈아타고“자연식물 보존구역”이란 팻말을 따라 자연림을 감상하며 30여분을 더 가서 케이블카를 타고 만년사(萬年寺)에 이르게 된다.
아미산은 낙산대불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다. 골마다 절이고 봉우리마다 불명이다. 그래서 최고봉은 만불정萬佛頂이요. 주변봉우리들은 천불정千佛頂이라 한다. 아미산은 보현보살의 도량으로서 보타산 관음도량과, 구화산 지장도량, 오대산의 문수도량과 함께 중국 4대불교성지중의 한 곳이다.
만년사는 당나라 희종 때 지은 절로서 처음에는 보현사라 했다가 명나라 신종 때 황제가 “만년사”라고 이름을 지었다. 무량수전내에는 송나라 태종 때인 980년에 조성된 높이7.3m의 청동 보현보살상과, 불치아사리, 패엽경 등 세 가지 성보가 모셔져 있는 곳이다.법당에 예불을 올리고 주지스님과 기념촬영을 가진 후 도량을 돌아보고 보국사 참배 시간 약속 때문에 하산을 한다.
아미산 불교협회 보국사 報國寺
보국사는 명나라 신종 때 창건된 절로서 부처님께 보은하고 나라에 충성하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보국사는 아미산 불교를 대표하는 본산답게 사찰의 규모도 대단하다. 이 절은 본래 저녁 5시 이후에는 입장이 안 되지만 멀리서 온 흥륜사 불자들을 위해 산문을 열고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 저녁예불 시간이어서 우리 순례자들은 수십 명의 스님들과 함께 아미타불 염송을 부르면서 저녁예불 올리며 염불경행에 동참하는 아미산에서 좋은 인연공덕을 짓고 어둠이 내리는 시간 숙소로 가기위해 산문을 나선다.
[4월 29일] 대족 석굴
오늘은 아미산을 출발하여 낙산과 성도를 거처 중경(重慶)으로 가는 먼 여정이다. 멀고 긴 시간을 보내기 위해 재담과 장기자랑을 즐기다보니 어느 듯 오후 4시경 사천성 대족현 보정산 석굴大足縣 寶頂山 石窟)에 도착한다.
보정산 석굴은 사천성 중경시 북동쪽으로 160km떨어진 대족 현에 자리 잡고 있다. “북동황北敦煌. 남대족南大足” 북쪽에는 돈황이 있고, 남쪽에는 대족이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유명한 중국의 석굴이다. 만당(晩唐)에서 청대(淸代)에 이르는 석각불상이 70여 장소에 6만기에 달한다하니 정말 놀라지 않을 수없는 노천 박물관이다.
종교란 과연 무엇인지를 새삼 되새기게 하는 불교미술의 기적인 동시에 불교미술의 보고가 바로 이곳 대족이다. 대족석굴 중에서도 보정산, 북산, 남산, 석문산 (石門山), 석전산의 석각규모가 가장 웅대하고 화려하다.
특히 오늘 우리가 친견하는 대족 현 동북 15km에 있는 보정산 석굴은 1179년부터-1249년까지 70년에 걸쳐 조성된 불상들로 삼존불과 천수관음상이며 부처님 열반상을 비롯하여 극락세계와 지옥 명부에 이르기까지 불교의 윤회 관과 설화들을 조각으로 섬세히 새겨 놓은 불교 야외박물관이다.
이 모든 불상은 남송 밀종(密宗)의 조지봉趙智鳳대사가 밀종의 도량을 세우기 위하여 불사를 이룩한 것이라 한다. 석각은 미학적으로 완벽하고 한 폭의 입체 그림처럼 구성되어있다. 북산석굴은 서기892년부터 250년에 걸쳐 만들어진 감실석굴에는 불교조각 품들이 벌집처럼 빽빽하게 서로 연결되어 400m에 달하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보현보살상은 동양의 비너스라 불릴 만큼 감탄을 자아낸다.
보정산 석굴의 조각 하나하나마다에는 조사들의 큰 원력과 거룩한 불심이 시공을 넘어 살아숨 쉬는 듯하여 발길이 떨어지질 않는다. 대족을 친견할 수 있게 된 인연을 감사하며 보정산의 모습을 비디오에 담으려하는데 관리인이 불허하여 가슴에 담는다.
이곳 말고도 대족에는 꼭 봐야할 석굴들이 수 없이 많은 것을 알면서도 시간에 쫓겨 아쉬운 마음으로 보정산 석굴의 감동을 간직한 채 버스에 올라 중경으로 향한다.
중경重慶
어찌된 일일까, 중경에서 손꼽는 식당에서 만찬을 하였지만 모두가 설사와 두통을 일으킨다. 다행히 내과의사인 변 회장님 덕으로 응급치료를 하고, 체한 분들은 수지침을 놓아 녹원단장님이 불을 끈다. 아마 무리한 여행에 지치고 힘든 탓이 아닐까 싶다. 한바탕 소동의 순간을 보내고 세계의 최대도시 중경에서 순례의 마지막 밤을 맞는다.
[4월 30일] 중경조천문 부두
오늘은 귀국하는 날이다. 출국시간이 오후로 잡혀 중경의 명소를 구경하기 위해 호텔을 나서는데 반갑지 않은 비가 내린다. 하지만 조천문 부두에 이르자 다행이 날씨가 좋아지기 시작한다. 중경(重慶)이란 말은 경사가 겹친다는 뜻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면적은 8만2천 평방키로 미터이고, 인구는 3천3만 명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인구를 가진 도시이다. 동쪽으로 호북성, 호남성, 남쪽으로 귀주성, 서쪽으로 사천성에 접하고 있다.
1997년 인근도시를 흡수하고 직할시로 승격되면서 세계최대 도시가 되었다.양자강과 자링강의 합류지점에 위치하여 두 강 사이에 서쪽에서 발달한 반도모양의 산지 경사면에 시가지가 형성된 산성(山城) 도시이다.
철도와 수상교통이 발달한 도시로서 각종 철 광물과 천연가스가 많이 생산되고, 공업은 물론 농산물이 풍부하고 상업이 활발한 4천년의 문화와 역사를 간직한 고도이다. 조천문 朝天門 부두 조천문 부두는 장강의 유명한 부두로서 5성금 호화여객선과 4성급 대형여객선을 탈 수 있는 선착장이며 의창, 무한, 남경 등의 대도시로 운항하는 중심부두이다.
이곳에서 남경까지는 5일 정도가 걸린다. 조천부두의 공원에 피어있는 아름다운 꽃들과 빈병과 접시로 만들어 놓은 조형물이 인상에 깊게 남는다, 중경인민대례당 重慶人民大禮堂 산 중턱에 자리잡고 서있는 중경시인민대례당은 중경시의 대표적인 건축물이며 북경의 천단을 모델로 하여 지어진 건축물이다.
중경은 도시전체가 기복이 심한 높은 산언덕으로 형성되어 있다. 중경시내는 커다란 몽둥이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물어보니“중경의 집들 대부분이 높은 언덕에 있고, 아파트에 승강기가 없는 관계로 그 막대기에 짐을 매달아 생활품을 운반해주고 돈을 받는 짐꾼들“ 이라고 한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청사
방문 순례의 마지막 코스로 중경에 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청사를 방문한다. 대한민국이 해방되던 해인 1945년 1월부터 9월까지 중국에서 27년 동안 독립투쟁을 전개해왔던 임시정부가마지막으로 사용했던 곳이다.
머나먼 이국땅까지 와서 험난한 고초를 겪으며 조국독립을 위해 투쟁하시던 애국투사들의 정신과 민족 사랑을 생각하며 임시정부 청사를 돌아보고 중경국제공항에서 비행기에 올라 한국으로 돌라간다.
30명이 넘는 가족들이 7일간의 힘든 일정에도 건강하고 밝은 모습으로 순례를 마치게 하여주신 부처님 가호에 감사드리며 아미산의 보현보살과 낙산의 미륵대불 친견이 세세생생에 좋은 인연공덕이 되길 빌면서 서안의 현장법사가 번역해주신 반야심경을 염송하며 이번 성지순례를 회향한다.
불기 2548(2004)4.30 글 정 법 륜 합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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