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성지순례 (엘로라 석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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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흥륜사 댓글 0건 조회 589회 작성일 16-04-18 21:37본문
인도성지순례 (엘로라 석굴) 회향
오늘은 엘로라 석굴사원 참배를 위해 이른 아침에 조금 서두러 일찍 왔다. 많은 관광객이 몰려오면 기도를 올리고 참배를 하는데 복잡을 피하고 장애를 받지 않기 위해서다.
날씨가 너무 좋아 푸른 하늘에는 목화구름이 두둥실 나르고, 엘로라 석굴사원입구 나무와 풀들은 밝은 햇살을 받아 유난히도 푸르고 빛나게 반짝인다.
엘로라 석굴은 모두 34개의 석굴로 이루어져 있다. 흥미로운 점은 불교와 힌두교, 자이나교 모두가 흥성했던 시기에 따라 조성되어 군락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엘로라에 가장 먼저 석굴을 만든 종교는 불교였다.
아잔타의 석굴 조성이 쇠퇴기에 접어들던 7~8세기에는 12개의 불교 석굴이 조성되었다.
비슷한 시기 힌두교는 그 옆에 경쟁적으로 석굴을 조성했다. 힌두교 석굴 조성은 10세기까지 계속되었으나. 현재의 13~29번 굴이 힌두교 석굴이다.
자이나교도 8~10세기에 으르도록 다섯 개의 석굴을 만들었다.각각의 종교들은 서로 경쟁하듯 더 크고 화려한 석굴을 만들었다. 그래서 엘로라의 석굴들은 아잔타의 것보다 훨씬 크고 화려하다.
다른 종교에 비해 먼저 조성된 불교 석굴의 초기 것은 소박한 모습인데 비해 후대로 갈수록 규모가 크고 화려해졌다.
힌두교나 자이나교의 기법을 채택하여 불교석굴을 조성한 것으로 보아 이웃 종교의 영향을 받은 듯하다.
12개의 불교석굴 가운데 가장 주목할 석굴은 10번 굴이다.불교석굴 가운데 유일한 차이티야 석굴이며 인도에 존재하는 가장 훌륭한 차이티야 석굴로 평가되고 있다.
석굴 입구의 기둥과 내부의 반원형 천장은 마치 목재를 이용해 지은 집처럼 대들보와 서까래 형태로 조각되어 있어 “목수의 동굴"이라 불린다.작은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이 중앙에 모신 부처님의 법신에 드리워져 아름답고 신비한 분위기를 연출한다.11번 석굴은 2층,12번 석굴은 3층인데 모두 바위를 파고 들어가 조성했으나 바닥과 천장이 마치 회반죽을 바른 듯 매끄럽게 마무리 되어있다.석굴 조성에 얼마나 많은 공력이 들어갔으며 장인들의 솜씨 또한 얼마나 놀라웠는지.특히 12번 석굴은 승방인 비하라와 예불당인 차이티야의 기능을 함께 갖추고 있다는 점도 특징이다.
불교 석굴들이 끝나면 곧바로 힌두교 석굴들이 이어진다.불교와 힌두교가 사이좋게 맞대고 모여 있다. 힌두교 석굴은 불교에 비해 훨씬 더 화려하고 역동적이다. 불교 석굴들이 입구에서 안쪽으로 돌을 파고 들어가며 수평적으로 조성된데 비해,힌두교 석굴을 바위산 위에서 아래로 파고 내려오며 조성됐다는 점도 다르다.특히 16번 석굴은 힌두교의 주신인 시바신은 조각이 정교하여 건축사에 남을 놀라운 작품으로 여긴다.
엘로라석굴은 이처럼 종교가 서로 갈등하고 대립하기 보다는 평화롭게 공존하며 상생의 경쟁을 펼치며 이룩한 문화유산이라는 점에서 후대에 큰 감동을 던져준다.하나의 종교가 발전하기 위해서 다른 종교를 핍박하고 파괴한 사례는 많았다.
실크로드 주변의 수많은 불교 석굴들이 이슬람교 유입으로 파괴당하였고,불과 수 년 전 바미안의 대불이 이교도에 의해 파괴당하는 참사도 있었다.
하지만, 이곳 엘로라에서는 400여 년간 불교와 힌두교,자이나교가 이웃으로 공존하였고,때로는 경쟁이 되기도 하였지만 이웃 종교를 핍박하고 파괴하며 자기 종교의 위상을 더 높이려는 폭력적인 행위는 적어도 없었다. 이러한 점에서 엘로라 동굴은 독선과 이기심으로만 살아가는 이 시대 사람들에게 던져주는 의미가 크다 할 것이다.
여러 종교가 치열하게 경쟁을 펼쳤던 인도,인류 역사상 가장 화려하게 철학과 종교의 꽃을 피웠던 시기에 이 땅에 오신 부처님 그분은 진정 평화로운 공존과 상생의 가르침을 전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룸비니를 시작으로 부처님의 발자취가 남아있는 인도성지순례를 엘로라 석굴참배를 끝으로 가족들과 순례다 모두의 인연 공덕이 원만하길 비는 예불과 축원법회로 회향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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