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성지순례 (성도지 붓다가야 )
페이지 정보
작성자 흥륜사 댓글 0건 조회 562회 작성일 16-04-18 21:50본문
인도성지순례 (성도지 붓다가야 )
[3월 17일] 붇다가야 깨달음의 성지
이른 아침 수자타호텔에 마련된 불단에 예불을 올리고, 버스로 10여분거리에 있는 마하보디사원으로 간다.새벽이 열리는 이른 아침,유난히도 눈 부시는 동녘의 밝은 햇살은 순례단을 맞아주시는 부처님의 자비광명이 아닐까 싶다.
마하보디 사원 입구에서 연분홍색 연꽃 한송이씩을 사들고 손을 모은 채 줄을 지어 부처님 깨달음의 성지로 들고 있을 때 수많은 순례자들이 신기한 듯 바라본다.
붓다가야에는 부처님의 성도를 기리기 위해 아쇼카대왕이 세운 대탑과 정각을 이루신 보리수나무에는 2천5배년의 시공을 넘어 전 세계 인들의 순례행렬이 이어지고 있다.아쇼카왕은 재위 8년 깔링가 전투를 승리로 이끈 뒤 부처님 법으로 세상을 통치하겠다는 서원을 세우고, 재위 10년에 첫 순례지로 부처님이 성불하신 보드가야를 참배하고 불탑을 세웠다.
싯다르타 태자가 부처님으로 새롭게 태어난 붇다가야 성도지는 가야라는 도시에서 10km남쪽에 있다.지금 스리랑카 스님들이 보리수나무를 중심으로 대각사를 세워서 성지를 지키고 있고,1960년 이후 미얀마 중국 태국 일본 티베트 사원들이 들어서 있다. 부처님께서 성도하신 보리수 나무는 벽돌로 쌓아서 보좌를 만들어 놓았다.
순례단은 부처님의 깨달음을 기리기 위해 보리수나무 아래서 입정을 가진 뒤, 석가모니불 정근으로 예불기도를 올린다.
보리수는 피발라 나무였는데, 부처님께서 이 나무 밑에서 깨달음을 얻었다하여 보리수라 부르게 되었다.
마하보디사원 정문은 동쪽으로 나있고,나이란자강을 향하고 있다.6년간 고행 하신 싯다르타는 먼저 나이자란 강에서 몸을 씻은 다음, 수쟈타 여인이 올린 우유공양을 받으신 후 보리수나무 밑에서 정려에 들어갔다.
7일째 되던 날 새벽 먼동이 틀 무렵 드디어 확연한 깨달음이 싯다르타에게 다가왔다. "무엇이 인간의 생존을 윤회 속에서 허덕이게 하는가, 어떻게 하면 그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과연 인간다운 삶이란 무엇인가, 그 모든 문제들을 한꺼번에 대각을 성취하였다.이곳이 그 깨달음의 현장성도지이다.우리 순례단은 대탑 내의 부처님전에 참배를 올리고,밖으로 나와 마하보디 대탑을 여덟 번 돈후 보리수나무 아래 정좌하고 금강경을 독송하며 깨달음의 인연공덕이 성취되길 발원하였다.
석가모니부처님 깨달음의 선언이 세상에 울려 퍼졌다.바로 여기 마하보디사원으로부터.대지와 강물은 기쁨으로 요동쳤고, 구름처럼 모여든 천인들이 뿌린 꽃잎이 흩날려 무릎까지 쌓였다.그날은 싯다르타가 룸비니 동산에서 태어난 지 35년,왕의 자리를 버리고 진리의 길을 찾아 길을 나선지 6년이 되던 기원전 589년 12월8일이었다.그로부터 칠일동안 붓다는 보리수 아래에서 해탈의 즐거움을 누리셨다.그곳이 바로 여기 마하보디사원이다.
석가모니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이루신 이후로 마하보디사원은 전 세계 모든 불자들에게 최고의 불교성지로 추앙받고 있다.
아쇼카왕은 이곳에 사원을 세웠고 불자들의 순례와 경배가 끊이지 않는다.사원과 대탑은 세월따라 보수를 거쳤고 현재의 사원은 11세기와 19세기 후반에 각각 복원되었다. 하지만 사원 주변에는 기원전 2세기로 추정되는 난간 등 오랜 역사를 가늠할 수 있는 유적들이 여전히 산재해 있다.
순례단은 싯다르타가 부처를 이룬 성지 마하보디 사원을 떠나기가 아쉬워 석가모니불 정근을 올리며 불탑과 보리수나무를 돌면서 오랜 시간 기도를 올리다가 다음 성지로 발길을 옮긴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