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 황산 구화산 보타산 성지순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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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흥륜사 댓글 0건 조회 1,180회 작성일 08-07-29 17:49본문
소주 황산. 구화산. 보타산. 성지순례기
2005년 5월 23일 7박8일간의 일정으로 산수천하 제일 황산과 지장도량 구화산. 보타산 관음성지를 참배하기 위하여 녹원단장과 무여심을 비롯한 28명의 흥륜사 불자들과 함께 성지순례에 오른다.
오전 10시 인천공항에서 이륙한 항공기는 1시간 30분을 날아 중국의 푸동浦東 공항에 내린다. 상하이는 중국의 상징인 용의 머리에 속한다면 푸동은 여의주로 불린다. 중국정부는 푸동을 21세기 국제도시 아시아 최고의 비즈니스 센터로 만들어 가고 있다.
황포 강 동쪽 장강입구의 서쪽에 자리 잡은 푸동은 지리적으로 뛰어난 장점을 가진 중국의 신도시이다. 면적은 1억 백만 평이고, 인구는 1백 5십만 명으로 고속 성장하고 있는 중국의 경제특구이다. 그동안 중국을 여러 차례 방문했지만 이처럼 발전하고 있는 푸동이란 도시가 있는 줄을 미처 몰랐다.
동야의 베니스 소주
여기서 버스로 2시간 달려 강소성 소주에 닿는다. 도시면적은 우리나라 서울의 14배로 8.488평방키로 미터이고, 인구는 5백 7십만 명이다. 태호 太湖 북쪽과 동북쪽의 양즈강 揚子江 삼각주를 관장하는 행정중심 도시이다. 중국에서 몇 안 되는 비옥한 농업지역중심부에 자리 잡은 소주는 동양의 베니스라 불릴 만큼 물이 많은 도시이다.
옛 부터 아름다운 비단과, 자수. 옥, 공예품 등이 유명한 곳으로 비단이 장사 왕 서방의 고향이다.
한산사寒山寺참배
한산사는 양처 감연간에 지어진 절이다. 문수보현의 화신으로 구름처럼 바람처럼 동서사방을 현신하며 중생을 제도하던 산부처 한산과 습득이 이곳에 수행하며 창건하였다하여 한산사라 이름 한다. 이 사찰에는 당나라 시인 장계張繼의 풍교야박 楓橋夜泊 이라는 시로 유명하다.
장계의시 詩
“달은 지고 까마귀는 우는데 하늘 가득 서리가 내리네. 풍교에는 고깃배 등불을 마주하여 시름 속에 자고. 고소성 밖 한산사에는 한 밤중에 종소리가 객선에 이르네.“ 장계가 노를 저어 마을로 돌아가던 중 밤중에 풍교에 배를 정박해 두고 있는데 그 때 마침 한산사의 종소리가 울려 퍼지자 이시를 지었다고 한다.
졸정원 拙庭園
중국의 4대 정원 중 하나로 손꼽히는 졸정원의 주인 왕헌신은 비단장사로 거부가 된 뒤 벼슬을 하려다가 쫓겨나 정원바닥에 수많은 돌을 심어놓고 그것을 밟으며 졸부들을 밟는다는 의미로 깔아 놓았다고 한다.
그는 결국 정치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죽음을 당하자 유산으로 정원을 물려받은 아들은 도박으로 정원을 송두리째 날린 뒤 자살로 생을 마감하였다. 연못에 고여서 썩은 물을 뒤덮은 연꽃들은 졸정원의 굴곡진 지난 세월을 이야기 하듯 화려함 뒤에 숨겨진 아쉬움이 담겨져 있다.
그러나 졸정원은 계절마다 각기 다른 아름다운 모습으로 오고가는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소주에는 이외도 가볼만한 곳이 많지만 일정상 소주를 뒤로하고 항주에 와서 성지순례의 첫날밤을 맞는다.
[5월24일] 항주 영은사
금강경독송으로 아침예불을 올리고 항주시민의 사랑을 받는 영은사 참배를 위해 나선다. 영은사 靈隱寺는 1660년 전 인도승려 혜리가 항주에 와서 산봉우리를 보고 "인도의 영축산이 날아온 것" 이라며 감탄한데서 유래되어 이 산의 정상을 비래봉飛來峰이라 하고, 산 이름도 영축 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영축산에 영은사는 중국에서도 유명한 사찰로서 동진東晉 때 지은 사찰이다. 전쟁으로 여러 번 소실되었다가 현재의 건물은 19세기에 중건한 것이다. 울창한 수목과 갖가지 기암괴석이 눈길을 끌고, 산문입구 이곳저곳의 암벽에 새겨놓은 470 여개의 다양한 불상들이 미소를 지으며 우리를 반긴다.
사찰경내에 들어서자 참배객들이 인산인해를 이룬다. 영은사는 하루에도 2만 명이 넘는 참배인과 관광객이 찾을 정도로 항주시민의 공원이자 명소이다. 20만평이 넘는 넓은 경내의 울창한 나무숲과 맑게 흐르는 물이 뭇사람들의 발길을 끌만하다. 법당에 예불을 드리고 도량을 돌아본 후 영은사를 내려간다.
항주 서호 杭洲西湖
항주에 서호西湖가 없다면 항주를 갈 이유가 없다고 할 정도로 아주 아름답고 볼만한 곳이다. 서호는 항주 서쪽에 자리 잡고 있다하여 서호라 한다. 타원형 호수로서 수심은 1.8~2.8m정도이다.
중국인들은 서호를 열 가지 절경으로 꼽는데, 연꽃 향기가 그윽한 곡원풍曲院風荷와, 소동파가 만든 제방인 소제춘효蘇堤春曉에 5백 그루의 모란하며, 1만5천 그루의 꽃에 둘러싸인 홍어지紅魚池에 노는 분홍빛 잉어를 바라보는 즐거움에 부쳐진 화항관어 花港觀魚 등이 있고,
남고봉과 북 고봉이 산수화처럼 운치를 더해주며, 영은사에서 울려오는 종소리가 속세의 번뇌를 씻어준다는 남병만종南屛晩鐘이며, 뇌봉산 꼭대기에 있는 뇌봉탑에서 비치는 석양의 경관이 서호를 찾은 사람들을 취하게 할 만큼 아름다운 곳이다.이렇게 좋은 경관을 가진 서호에 배를 띄우고, 가득이 펼쳐오는 풍경을 감상하며 1시간이 넘게 호수 위를 떠다니며 유람을 즐긴다.
점심공양 후 산수천하 제일이라는 황산을 보기 위해 버스에 올라 4시간 만에 황산이 바라보이는 골프호텔에서 이틀째 밤을 보낸다. 1년 전만 하더라도 덜컥대는 비포장 길을 돌고 돌아 항주에서 여기까지 7시간이 넘게 걸렸지만 몇 개월 전에 새로 만든 포장도로 덕분에 너무나 편하고 빠르게 올 수 있었다한다.
[10월 25일] 황산에 오르다
오늘은 황산에 오르는 날이다. 신묘장구다라니 7편으로 높은 산을 오르는 일행들의 안전을 빌고, 아침8시 버스에 올라 협소하고 경사진 산길을 따라 3시간을 달린 뒤 케이블카 승강장에 도착한다.
멀쩡하든 날씨가 케이블카를 타고 산 중턱쯤 오르자, 눈앞을 분간할 수 없을 만큼 비를 뿌리고 안개가 온 산천을 뒤덮어 좋은 풍광을 볼 수 없게 만든다. 하지만 아쉬움도 잠시뿐. 8부 정상에 이르는 순간 아름다운 산 봉우들이 수줍은 처녀처럼 자태를 들어내자 일제히 환호를 질러댄다.
황산黃山은
중국 남부 안휘성의 동쪽 양자강 이남에 위치한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이다. 면적은 154평방키로 미터이고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군봉들 중 72개가 이름을 가진 봉우리다. 황산 풍경구 중심은 동경118도 북위30도10분에 위치하고 있다. 진시황 때부터 당천보년 唐天寶年까지는 의산이라 하였다.
전설에 의하면 중국인의 선조 헌 원 황제가 이 산에서 도를 닦으면서 황산의 기를 받아서 신선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어, 당 명황이 이 산의 이름을 황산이라 고쳐 부르게 되었다. 황산은 중국의 10대 명산중의 하나이며 1990년 UN에서 세계자연과 문화 두 유산으로 지정하였다.
너무나 아름다운 산의 비경에 취해 점심공양은 오후2시가 훨씬 지나 황산 정상 가까운 산장에서 한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하였듯이 산을 오르느라 힘든데다 시장기에 지친 이원장님이 고통스러워하다가 산장호텔로 되돌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미리 배려하지 못하여 송구한 마음이 든다.
기괴한 모양과 깎아지른 돌산 봉우리들이 하늘을 향해 치솟아 있고, 그를 감고 도는 운해와 운무를 뚫고 우뚝우뚝 솟아오른 바위산들이 천하의 선경을 이룬다. 발길이 닿는 곳마다 풍광이 너무나 아름다워 카메라셔터에 손이 절로 올라간다.
하지만 주어진 시간 때문에 더 이상 머물지 못하고 내려가는 것이 아쉽다. 황산에 밤이 내리자 사람들이 밀려든다. 숙소마다 방사가 없어 복도와 계단에 점프와 담요를 덮어쓰고 새우잠을 자는 사람들로 수두룩하다.
[5월 26일] 황산에서 →구화산으로
새벽4시 황산의 일출을 보기위해 옷을 두툼하게 입고 녹원단장과 산으로 올라가보니 넓은 산 전체가 온통 사람들로 가득하여 앉을 자리가 없다. 바위틈 나무 가지를 잡고 황산의 일출을 보려고 한참을 기다렸지만 기상이 좋지 않아 뜻을 이루지 못하고 해가 솟은 뒤에서야 카메라에 담아 내려간다.
황산을 하산하여 구화산으로 간다.
숙소를 출발하여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오며 바라보는 황산의 모습은 참으로 지구의 신비이자 만고의 장관이다. 황산은 황하 강과 양자강에 더불어 중국의 상징인 동시에 세계인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곳이다.
일찍이 중국개혁 개방에 설계사인 등소평이 75세의 고령에도 1979년 7월 걸어서 이 곳을 다녀갔고, 2001년 5월에는 강택민 총서기와 주용기, 이광요, 대한민국의 노태우 대통령도 다녀간 곳이기도 하다.
황산을 내려와 대기하고 있던 버스를 타고 4시간을 달려자 구화산에 이른다. 10년 전 중국불교회의 초청으로 송월주 스님과 한 번 다녀간 곳이다.
지장도량 구화산 배경대
구홧산에 도착하면서 점심공양을 먼저하고, 김교각 지장보살이 처음 와서 수행하던 배경대를 참배한다. 하늘높이 우뚝 솟은 산봉우리는 가사를 걸친 부처님만 같고, 천길 절벽에 걸린 배경대는 불보살님이 내려오시는 것만 같다. 배경대를 내려와 김교각 지장보살의 등신이 모셔져있는 지장사로 향한다.
김교가각스님을 모신 지장사참배
1천3백 년 전 신라의 왕자이던 스님은 내란의 와중에서 날로 참혹해가는 민중의 삶을 지켜보면서 왕자의 신분을 버리고 당나라로 건너가 지장이란 법명으로 출가하여 지장보살에 귀의하였다.
그는 양자강 남쪽 구화산 동굴에서 수행을 닦아 법력이 증진되면서 그를 찾아 모여든 제자들과 함께 화성사를 창건하고 구화산을 지장도량으로 만들어 지장신앙을 전파하였다. 당시까지 중국 사람들에게 낮 설었던 지장신앙을 널리 전파해 구화산을 중국4대 불교성지의 하나로 자리 잡게 하였다.
특히 김교각 스님은 99세에 입적하시던 날 "내가 열반한 3년 뒤 지장보살의 화신으로 다시 세상에 올 것이다." 라고 유언하신바대로 오늘까지 13억 중국인들에게 절대적인 신앙의 생불이 되어 있다.
화승사 자명선사 등신불 친견
화승사는 자명스님의 등신불이 안치된 절이다. 자명스님은 김교각스님의 법손으로 평소에 김교각스님의 등신불을 친견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내가 생불이 되어 그 일을 대신 하겠다. "는 서원으로 성불하신 자명선사의 등신불을 친견할 수 있는 사찰이다. 법력과 영험으로 가득한 구화산의 여러 절을 참배하다보니 어느 듯 해가 지고 밤이 내린다.
구화산 마을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다. 변한 것이 있다면 불편하던숙소가 조금 편리하게 달라진 것이 유일한 변화이다.
[5월 27일] 구화산 → 항주
오늘은 지장경 한편으로 평안한 여행이 되길 발원해본다. 떠나기에 앞서 숙소 가까이 있는 기원선사를 찾아 많은 스님들과 함께 사시예불을 드리고, 10년 전 이곳을 왔을 때 반갑게 맞아 주시던 인덕장로께 인사를 올리려고 하였으나 "얼마 전에 열반에 드셨다" 고 한다. 그분은 구화산을 대표하는 종정스님이자 중국불교의 고승이었는데. 이제 그분을 다시 볼 수 없게 되었다.
항주
구화산 성지를 출발하여 6시간 만에 항주에 이른다. 항주는 절강성의 큰 도시로 면적은 683만 평방키로 미터이고, 인구는 180만 명으로 전단 강 하구에 위치하며 서쪽에 서호를 끼고 있어 소주와 함께 아름다운 고장으로 알려져 있다. 정치경제 문화의 중심이며 녹차의 생산이 많고, 전통 직물과 염색공업이 발달한 곳이며 사계절관광객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5월 28일] 보타산 광음성지 참배
관음성지 보타 산을 참배하는 날이다. 항주를 출발하여 시원히 뚫린 고속도를 타고 2시간을 달리자 영파 항구에 도착한다. 대합실에 들어서자 보타산으로 가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중국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대구파계사에서 불자들을 인솔하고 온 스님들이 나를 알아보고 인사를 한다. 출항시간이 한참 남아서 아이스크림으로 더위와 갈증을 달래는 동안 승선할 시간이 금방 온다. 영파에서 보타 산까지는 뱃길로 약 30분 정도가 걸린다.
모든 여객선과 차량에는 모두가 관세음보살을 모시고 있어 관음성지임을 얼른 알게 한다.
보타산普陀山
보타산은 중국불교의 四대성지 중의 한 곳이다. 절강성 저우산 군도 舟山群島 보타산에 불교가 처음 들어온 것은, 당나라 초기 862년 일본의 고승 혜악스님이 최초로 사찰을 세웠다고 한다. 큰절로는 보제사普濟寺와 법우사法雨寺 반타암盤陀庵 영석암靈石庵 등의 사찰과 차오민 동굴 등의 명승지가 있고, 최근에 청동으로 조성하여 모신 해수관음대불이 있다.
해제사 海濟寺
보타산에 토착하여 여장을 푼 다음 케이블카를 타고 산 정상에 위치한 해제사를 찾는다. 경내로 드는 길은 오래된 등나무 넝쿨이 터널을 이루고 있어 천년고찰의 운치를 더해준다. 사찰 내는 참배하는 불자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사람들의 사이를 뚫고 관세음보살님 앞에 예불을 올리며, 수 십 년간 보타산을 친견하고 싶어 하였던 회포를 털어놓으며 기쁨의 절을 올린다.
법우사 法雨寺
두 번째로 법우사를 참배한다. 법우사란 메마른 세상에 단비와 같은 부처님의 감로 법우를 내리시고, 목마른 중생의 소원을 거두어 주는 절이라는 뜻이다. 법당에 들어가 심경을 외우고 찬불가를 부르면서 “먼 길을 찾아온 순례자들의 소원을 거두어 달라”고 발원을 올린다. 사찰의 규모도 크지만, 수 백 년생 나무들이 천년가람을 지키고 있어 사찰을 더욱 고풍스럽게 한다.
해수관음보살
보타산 남단 남해가 한눈에 들어오는 산 정상에 청동으로 조성하여 모신 거대한 해수관음보살상은 자비한 상호를 지으며 보타 산을 찾는 인연중생들을 반려주고 계신다.
관음원觀音院
관음원은 보타 산에서 최초로 지어진 절이다. (862)일본인 혜악스님이 오대산에서 관세음보살을 모시고 보타산 앞바다를 지날 때 태풍이 몰아치고 폭우가 쏟아져 하는 수없이 이곳 조음동굴에 내렸다.
혜악은 “관세음보살이 일본으로 가기 싫어한다.”는 생각이 들어 이곳에 관음원을 짓고 불교를 전파하기 시작한 것이 보타산에서 최초로 세워진 절이다. 관음원에 들어서자 보타산 서쪽바다 수평선위에 걸려있는 낙조의 비경이 관세음보살의 상호처럼 보인다. 참배를 올리고 도량을 살펴보니 허허 넓은 푸른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고, 조음동굴 법당 밑을 파고드는 물보라는 마치 용이 용트림을 하는 모습이다.
여러 사찰의 참배를 마치고 숙소로 들어오니 이병만회장님과 이종락. 수미심이 공양도 들지 않고 감기몸살로 누워있어 걱정스럽다. 어서 툴툴 털고 내일아침은 일어나야 하는데 어쩌면 좋단 말인가, 늦은 밤까지 관세음보살을 부르다가 잠자리에 든다.
[5월29일] 오늘은 낙가산을 참배하고 상해로 간다.
관세음보살님께 천수심경으로 “아무런 장애 없이 성지순례가 끝날 수 있게 하여 달라”며 발원올리고 아침공양을 위해 내려간다. 식당에 도착하니 어제 그토록 앓던 세분들 모두가 건강하고 밝은 표정으로 식사를 하는 모습에 반가움과 안도의 숨을 내쉰다.
낙가산 洛迦山 성지참배 락가산은 보타산 부두에서 배를 타고 30분 만에 도착하는 거리에 있다. 보타 산이란 말은 보타낙가 산의 준말로서 남해 관음성지는 보타산과 낙가산 두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선착장에 내려서 수없이 많은 돌계단을 밟고 정상에 오르자 낙가산 전체가 크고 작은 절들로 연화장세계를 이룬다.
가는 곳마다 절이고 이르는 곳마다 사찰이다. 사원이 너무나 많아, 참배를 다 올리려면 족히 며칠은 걸려야 할 것만 같다. 큰 절만 선별하여 참배를 올리고, 부처님 진신사리가 모셔진 불탑 앞에 기도를 끝으로 다시 보타산 보제사 참배를 위해 배에 오른다.
보제사普濟寺
송나라 초 매령산을 보타산으로 개칭하였고, 송 태종 3년에 보제사 전신인 원광사를 지어 그 때부터 보타산이 관음도량이 되었다. 청나라 건륭 년 간 때 보타산은 3개의 큰 사원과 88개의 암자와 148개의 기도원이 있었고, 승려 2천여 명이 수행을 했다고 한다. 보제사 도량에는 수령이 오래된 나물들이 찾는 사람들의 더위를 씻어주며 천년가람의 향기를 뿜어낸다.
대웅전에서 이번 성지순례의 회향을 고하는 심경봉독과 사홍서원으로 참배를 끝으로 어머니의 품안과도 같은 보타산을 뒤로하고 상해로 가는 유람선에 오른다. 5시간에 걸쳐 억센 파도를 가르며 항해한 유람선은 해가질 무렵 상해 부두에 닿는다. 육지에 내려 저녁공양을 들고, 숙소로 오는 상해와, 푸동의 고층빌딩이 쏟아내는 야경은 그야말로 불야성을 이룬다.
내일은 귀국길에 오른다.
모두 긴 여행에 지처서인지 “어서 집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는 표정이 역역한데, 나는 왠지 끝나는 순례가 아쉽고 서운하게만 느껴진다.
[5월 30일] 귀국길에 이번 중국불교 성지순례를 회향하면서 감회가 떠오른다. 오랜 역사를 두고 찬란히 빛났던 중국불교가 모택동의 인민문화혁명에 의한 종교말살 정책으로 수십 년간 빛을 잃고 있는 것에 마음 아파해온 터였다.
그런데 다행히도 주은래와 등소평에 이은 개혁개방에 따른 불교부활 정책으로 곳곳마다 절을 다시 짓고, 승려교육을 위한 불교대학이 생겨나며 사찰마다 참배를 올리는 불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모습에 벅찬 감동을 안고 귀국한다.
30여명의 일행들이 7박 8일간의 순례동안 작은 일 하나 없이 잘 마칠 수 있게 하여주신 부처님 전에 감사의 삼배를 올리며, 13억 중국인들의 가슴마다에 활화산 같은 불심이 꺼지지 않고 영겁에 타오르길 발원하면서 이번 성지순례를 마친다.
글과 사진 정 법 륜 합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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