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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성지순례 (전정각산.수자타 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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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흥륜사 댓글 0건 조회 418회 작성일 16-04-18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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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성지순례 (전정각산.수자타 탑) 
    
붓다가야에서 멀지 않고, 부처님께 최초로 고양을 올린 수자타마을과 네란자라강과도 가까운 거리에 설산이 있다. 이 산의 이름을 전정각산이라 부르게 된 연유는 부처님께서 정각을 이루기 전 6년간 정진하시던 산이라 하여 전정각산(前正覺山)산이라 한다. 멀리서 바라보면 꼭 코끼리 머리 형상과 같다하여 일명 상두산(象頭山)이라고도 한다. 
특히 여기 전정각산에는 동굴이 많은 바위산으로 산자락은 시다림을 하는 공동묘지였고,묘지 부근에는 불가촉천민들이 살아왔다고 한다.그런데, 전정각산과 붓다가야 사이로 흐르는 네란자라강 주변은 토지가 비옥하여 잘사는 수자타 마을이 있었으므로 수행자들이 탁발하기가 좋았을 것이다. 부처님이 고행하는 동안 시봉했던  다섯 비구 등이  이곳에서 수행했던 까닭도 동굴이 많고 목욕할 수 있는 강과 걸식이 용이한 마을이 가깝기 때문일 것이다.

현재 유영굴 바로 옆 동굴에는 부처님 고행상이 봉안돼 있다. 부처님은 하루에 보리 한 알 쌀 한 톨 정도를 드셨기 때문에 배와 등살이 달라붙고 피부는 검은 빛깔로 변하였다고 한다. 굴 안에 봉안된 고행상은 당시의 부처님 모습을 재현한 것이다.
그러나 부처님은 고행만으로 생사해탈을 실현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미련없이 고행에서 벗어나 성도를 위해 캄캄한 새벽에 붓다가야로 발길을 옮기고 있었다. 
그 때 수자타가 수행에 지쳐 쓰러질 듯 보이는 성자를 발견하고 공손하고 엄숙한 자세로 싯다르타께 공양을 바치려 하였다. 
싯다르타는"먼저 목욕한 후 공양을 받으리라" 하시고 흐르는 나이자란 강으로 내려가서 몸을 씻으셨다. 
그러나 부처님이 목욕을 하고 언덕으로 오르려 하자 오랜 고행으로 쇠약해진 몸은 움직이질 않았다.
이때 아사시나무 신이 가지를 낮게 드리워 부처님을 도와 강 언덕 위로 오르게 하니 눈부신 아침 해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싯다르타가 강 언덕위에 오르자 수자타가 유미 죽을 바치면서, "본래대로 기력이 충만하게 되소서."라고 발원을 올렸다. 
싯다르타는 한량없이 주원(呪願)을 외시며 공양을 드신 후 농부에게 길상초를 얻어 찾아간 곳이 보리수나무였다.  

부처님이 목욕하셨던 네라자라강은 파트나 부근에서 강가강과 합류한다. 순례단이 찾았을 때는 건기 철이라 물은 말라 바닥을 들어냈지만,맨발에 닿는 강물 속의 모래는 선녀의 살결처럼 한없이 부드러웠다.그러나 우기 철이 돌아오면 네란자라강은 둑이 넘치도록 뭇 생명들의 오아시스가 되어 흐르게 될 것이다.  
이곳을 참배 온 아쇼카왕은 부처님께 우유죽을 공양한 수자타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탑을 세워 놓았다.흥륜사순례단은 석가모니불정근을 올리며 수자타 대탑을 한참동안 돈 후 심경을 외우며 예불을 올린 다음 응공의 역사가 묻어나는 장소와 부처님이 번뇌를 씻어 내신 것처럼 삼생의 업장과 번뇌를 네란자라강에 씻어내고 청정한 몸과 마음으로 불교의 발생지 녹야원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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