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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실크로드 순례기 (막고굴 莫高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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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흥륜사 댓글 0건 조회 402회 작성일 16-04-18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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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실크로드 순례기 (막고굴 莫高窟)
 막고굴 莫高窟은 중국 간쑤성 돈황시에 있다.기원전 전한 시대의 불교 유물로 시작하여 당나라 후기까지의 불교 유물이 시대
별로 폭넓게 보존되어 있는 곳이다. 1961년 전국중점 문물보호단 위에 지정되었고,1987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
된 곳이다.   
우리 순례 단은 돈황 산장에서 점심공양을 하고, (7월8일)오후 2시가 조금 넘어 이곳  막고굴 성지에 도착한다.돈황에서 마고
굴까지는 버스로 20분정도 거리에 있다. 황량하고 착박한 삭막사이로 푸른초원이 간간이 눈에 들어오고,오아시스가 좁은 물줄
기를 따라 끊어질듯 하다가 다시 이어지곤 하는 명사산 절벽에 조성되어 있다. 

비단길은 동서의 문화와 문물이 넘나드는 통로였다.명사산의 동쪽 끝 절벽에는 남북으로 약1.6km에 걸쳐 492개의 석굴이 있고, 
2천여분의 불상과 4500m에 달하는 부처님 본생담을 주제로 한 벽화가 펼쳐져 있으며, 석굴마다는 경전과  고문서 회화 등 5만 
여점의 보물로 가득하다.  

둔황 석굴에 들면 역사속에 묻혀버린 시간을 만나는 것만 같다.당나라 때 이회양가 세운 기념비에 의하면 366년 처음으로 굴을 
뚫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그러나 현재는 5세기초에 개굴한 것이 최초의 석굴로 남아 있다.둔황 석굴을 한마디로 불자들이 복을 빌기 위해 만든 불교석굴
사원이다. 이 황량한 사막에 어떤 사람들이 무슨 목적으로 복을 빌었을까. 그에 대한 답이 석굴이 조성된 이유이다. 

이 길을 따라 동서문물교류가 일어나면서 상인들이 드나들었고,불교가 들어왔다.상인들은 장삿길을 떠날 때 출발지인 이곳에서 
무사하고 잘되기를 기원하였다. 이곳을 지배한 왕족과 귀족들은 자신의 땅이 전화 戰火에 휩쓸리지 않기를 부처님께 빌기 위해 
이곳에 사원을 새우게 되었던 것이다.    

둔황 석굴을  개굴하기 시작한 때는  전란이 끊이지 않던 5호16국 시기였다.특히 불교를 숭상한 북위의 지배를  받으면서 석굴 
조성은 완성되었다. 이런 이유로 둔황의 초기 석굴에는 북위시대 것이 많다. 
전란으로 백성의 삶이 불안하였던 상황이 오히려 불교를 꽃피우는 계기가 되었다. 

서역에서 많은 불상과 불경을 비롯한 고승들이 들어왔다.쿠차국의 불도징과 축법호 구마라즙이 대표적인 고승이다.또한,중국의 
고승 법현과 현장도 이 길을 따라 인도 구도의 길을 떠나갔다. 
법현은 399년에 63세의 고령에도 모래바람이 몰아치는 타클라마칸사막을 지나고,험준한 파미르고원을 넘어 인도에 가서 불경을 
구해 14년 만에 돌아왔다.법현이 남긴 글은 당시의 실크로드를 말해주고 있다."아무리 둘러보아도 막막하고,가야할 길을 찾으려 
해도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가 없다. 오직 죽은 사람의 해골만이 내가 가야할 길을 가르치는 표지가 되는구나......”

이처럼 험한 길이다 보니 둔황을 떠나 서역으로 가는 사람은 출발점이기도 한 막고굴 부처님 앞에 자신의 안녕을 빌고,많은 시주
도 하였을 것으로 생각 된다. 그것이 둔황 막고굴이 조성된 이유이다. 
원나라 때까지 석굴을 조성해 시간을 초월한 거대한 박물관인 동시에 화랑이 되어 있다. 막고굴은 정치,사회적인 이유들로 실크
로드가 쇠퇴하자 오랫동안 역사의 뒤안길에 묻혔다. 

1907년에 막고굴을 방문한 스타인은 이렇게 썼다.“비록 외관이 붕괴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동굴사원이 진정으로 살아
있는 예배장소라는 것을 알았다.정확히 오월중순만 되면 둔황의 오아시스 마을사람 수천 명이 모여서 이 성지에서 축제를 올린다.” 
하였다.

둔황석굴은 그 지역 사람들에게 결코 잊힌 불교 사원이 아니었다.스타인은 16호 석굴에서 많은 문서들이 출토되었음을 알고 손에 
넣었다. 둔황의 막고굴이 우리에게 더 친숙하게 느껴지는 것은 ‘왕오천축국전’ 때문이다. 

신라 혜초스님은 923년에 중국의 광저우에서 출발하여 바닷길로 인도에 갔다.4년간을 인도의 여러 곳을 순례한 후 파미르를 넘고, 
카수가르와 쿠차를 거쳐 둔황에 도착하였다. 이곳에서 오랫동안 머물면서 “왕오천축국전”을 집필하였다.삭막한 고비사막에 위치
한 땅이지만 보름달이사막의 모래 위를 비추는 환상적인 이미지로 다가온다.혜초 스님이 계림의 달을 그리워하였던 시가 생각난다. 

굴 법당 안에서 기도를 올리고 싶었으나“유적지 보존을 위해 협조해 달라”는 관리인의 의견에 따라 태양이 이글거리는 광장에서 
굴법당을 향하여 순례의 목적과 소원을 비는 예불을 드리고, 석가모니불 정근을 올린다. 
이 때 먼 길을  찾아온 순례 단을  감응하는  부처님의 자비인지,열기를 내 뿜던 태양은 금새 구름 속으로 자취를  감추고 기도를 
올리는 긴 시간 내내 굴법당처럼 시원해온다. 수많은 관광객과  참배를 온 사람들은  순례단의 기도모습이 신비로운지 연신카메라 
셔터를 눌러대거나. 따라 하는 이들도 있다. 

굴법당 안에 들어가 참배를 올리고 부처님을 대하니 정말 환희심이 절로나고 감회가 무량하다.시간이 없어 492개 석굴의 부처님을 
다 보지는 못하지만 한분 한분을 뵈올 때마다 그야말로 장관이고 진짜 신심이 솟는다.
28M의 남대불상과 북대불 앞에서는 가슴이 터질 것처럼 환희심이 난다. 그 옛날 하나하나 굴마다 불심을 다해 부처님 상을 만들고 
벽화를 그린 이름 모를 수행자들의 앞에 고개가 절로 숙여질 정도이다. 

캄캄한 굴법당을 손전등으로 비추일 때마다 모습을 들내는 수줍은 부처님들과 화려하기 그지없는 벽화를 보면서 그 옛날 부처님의 
본생을 보고 접하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 정도다.전생의 지은 인연공덕이 있어 이 거룩한 부처님을 친견할 수있다는 사실에 감사
하고, 인류사에 빛나는 훌륭한 문화유산을 접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행복이고 감계무량하다.  

한국말이 조금 서툰 가이드 아가씨의 혀를 감아 돌리는 안내목소리도 일미고 매력적이다.“사진을 촬영하지 말라”는 당부가 자주 
있지만, 그래도 이곳까지 온 기회를 그냥 말수 없어 이순간의 느낌을 카메라에 담기위해 몰래 모래 셔터를 누른다.  
남대불상을 참배하고  나오는 굴법당 안 후미진 코너에 벽화가 그려져 있던  빨간 벽석하나를  발견하고 그 옛날 막고굴의 정신을
한국의 불자들에게 전하고 나누기 위해 어른 집어 들어 곁에 있던 이소연화의 가방에 넣는다. 
  
막고굴을 참배하는 동안 구름 속에 숨어있던 태양이 발길을 돌리려는 순간 누가 부르기라도 한 듯 나타난다.따뜻하고 가득한 미소
로서 반겨주신 수많은 부처님들과의 만남에서 한없는 감동과 수행에 도움을 얻는다.

바람이 있다면,그 옛날 메마른 사막위에 찬란히 나타나신 부처님이 비단길을 열어주신 것처럼  모든 중생들에게 반야의 밝은 길을 
열어주시길 빌고, 지난날 역사 속에 빛나던 막고굴의 영광과  번영이 하루 빨리  되돌아오길 발원하며  돈황석굴의 순례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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